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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죽음을 묘사하는 또 다른 방식


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에야 내가 일전에 봤던 동명의 영화와 같은 스토리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는 약간 기분이 상했다. 일종의 스포일링을 당한 심경이랄까.


이렇게 영화로 먼저 접한 소설의 경우 글로만 되어 있는 소설을 읽고 그리는 내 머릿속 이미지가

무척 제한적으로 되버리는 경향이 있다. 계속해서 영화의 그 사람, 영화의 그 장면이 떠오르기에 다른 장면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한마디로 불편하지.



하지만 책의 중반을 넘어가고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영화에서 풀어놓는 이야기와 

소설에서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전개 방향이며, 독자가 바라는 심상이 다른 별개의 스토리라고 느꼈다.


그 이유를 아래에 주저리 적어보자면..


이 책을 중반쯤 읽었을퓨때 생각나는 하나의 드라마가 있었다.

tVN에서 방영했던 "기억" 연기파 배우 이성민씨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변호사로 등장했고, 시청률이 몇프로도 나오지 못했던 드라마였지만 나는 참 인상깊게 봤던 드라마였다. 그 이전에 이미 이성민씨가 등장한 전작(골든타임)을 인상깊게 봤던 터라 그런 것일수도 있겠다.


알츠하이머(일명 치매) 참 무서운 병이다.

모든 기억을 잃고, 자신이 낳거나 자신이 죽도록 사랑한 이의 얼굴과 이름조차도 잊게되어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으며, 누구인지도 잊게 만드는 무서운 병.

나는 그것을 "죽음'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내가 생각하는 죽음의 의미는

소설에서 아래와 같이 설명해준다.


반야심경 "그로므로 공(空)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 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영화는 전직 살인자인 한 아빠가 살인범을 잡아나가는 (결국에는 원하는대로 진범을 잡는) 권선징악 해피앤딩의 진부한 스릴러 스토리이지만

소설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전직 악인이 알츠하이머와 죽음을 적나라하게 서술하는 1인 독백드라마라고나 할가.

'죽음'과 '기억 잃음'에 대해서 너무나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미지근한 물속을 둥둥 부유하고 있다. 고요하고 안온하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공(空) 속으로 미풍이 불어온다. 나는 거기에서 한없이 헤엄을 친다. 아무리 헤엄을 쳐도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다. 소리도 진동도 없는 이 세계가 점점 작아진다. 한없이 작아진다. 그리하여 하나의 점이 된다. 우주의 먼지가 된다. 아니, 그것조차 사라진다.


난 생각해본다.

먼 훗날 늙어서 죽어야 할때가 된다면

알츠하이머에 걸려서 모든 것을 잊게된 후에 죽는것이 더 나을수도 있겠다고...

그러면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과거 후회', '가진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인한 슬픔을 느끼지 않게 될테니.